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명재家유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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팔송공윤황선생고택 [八松公尹煌先生故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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충청남도 논산시 노성면 장구리에 있는조선 중기의 문신
윤황(1572∼1639)의 가옥

 

지정번호 : 충남민속자료 제8호
지정연도 : 1985년 12월 31일
소재지 : 충남 논산시 노성면 장구리 52
시 대 : 조선시대
분 류 : 가옥

 

1985년 12월 31일 충청남도민속자료 제8호로 지정되었다. 이 고택은 처음으로 건축된 시기와 장소를 알 수 없다. 지금의 건물은 윤황 선생의 6대손인 윤정진(尹定鎭)이 1730 년대인 조선 영조 때 이곳으로 이축한 것이다. 그뒤 지금까지 윤황의 종가(宗家)로 대대로 내려오고 있다..
건물은 모두 4동으로, 안채, 사랑채, 아래채, 사당이 있고, 목재와 석재로 지어졌다. ‘ㄱ’자형 안채와 그 옆에 아래채가 있어 전체적인 건물의 배치 구조가 ‘ㄷ’자형을 이룬다. 별채로는 사당과 일자형 사랑채가 있다. 안채는 민도리집이며, 팔작지붕과 맞배 지붕을 겸해 있다. 가운데 3칸은 대청을 겸한 통간 우물 마루를 두었고, 오른쪽 툇간에는 누마루를 두었다. 누마루 뒤에는 방이 있다. 대청 옆에 2칸의 긴 방과 부엌이 연결되어 있다.
윤황은 본관은 파평(坡平), 자는 덕요(德耀), 호는 팔송(八松)·노곡(魯谷), 시호는 문정(文正)이다. 1597년(선조 30) 알성문과에 장원 급제하였고, 전적· 감찰·봉상시정을 지내 다가 군기감정 때 탄핵을 받아 노성에 은거했다. 1623년 인조반정 후 재등용되어 동부승지, 이조참의, 전주부윤을 지냈다. 정묘호란과 병자호란 때 척화를 주장하였다.
부제학 전식(全湜:1563∼1642)의 탄핵을 받아 영동군에 유배되었다가, 병이 들자 풀려나 왔으나 악화되어 죽었다. 그 뒤 영의정에 추증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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